자살자 주변에는 자살생존자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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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 주변에는 자살생존자가 남는다
  • 뉴경찰신문
  • 승인 2020.12.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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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하루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9명이다(2019년 기준). 자살 후에는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가 남는다. 자살생존자는 자살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연구들에 따르면 한사람의 자살은 적게는 5명, 넓게는 28명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루 190명에서 1064명의 자살생존자가 생기는 셈이다.

▲ 워낙 한강다리에서의 투신자살이 많다보니 한 보험회사가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OECD 국가 중 8년 연속 자살율 1위 국가이다.
▲ 워낙 한강다리에서의 투신자살이 많다보니 한 보험회사가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OECD 국가 중 8년 연속 자살율 1위 국가이다.

여기에는 가족이나 친구뿐 아니라 동료, 지인, 유명인사의 죽음에 영향을 받는 사람도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살생존자’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가족을 잃은 사람, 친구를 잃은 사람, 동료를 잃은 사람, 지지하던 연예인을 잃은 사람 등 6명의 자살생존자 이야기를 들었다.

장례식은 공적인 애도의 장이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자살생존자들은 장례식에서부터 애도의 첫 단계가 어그러진다.(<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딸을 잃은 A씨는 장례를 끝낼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아무것도 못 먹고 잠을 못 잤다. 모든 감정, 생각, 시간이 멈췄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삼일장이 끝나 있었다. 남편을 잃은 B씨도 “모든 것이 멈췄다”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이 이성적으로 절차를 진행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가족들은 그에게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자살이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않거나 1일장으로 치르는 경우도 있다. C씨는 하루 만에 친한 선배를 보내야 했다. 선배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당사자의 또래들로 장례식장이 가득 찼다. D씨는 친구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친구는 한강의 한 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한동안은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얼마 뒤 시신이 발견됐을 때도 유가족은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 죽었을까? 죄책감과 분노의 시간

공적인 절차, 장례가 끝나고 나면 감정이 휘몰아친다. 왜? 라는 질문이 시작이다. 왜 죽었을까?

B씨의 남편은 과로자살이었다. 원인을 지목할 수 있었기에 싸울 대상이 있었다. B씨는 남편의 죽음이 산업재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라도 했기에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디에 몰입하지 않으면 계속 그 기억에 매여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A씨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지난 5년, 딸이 보낸 신호가 무엇일지 수십만 번 생각했지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떨 땐 모든 행동이 신호처럼 생각됐고, 반대로 또 어느 행동도 신호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는 ‘자살자의 80%가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는 말이 치 떨리게 싫다.

심리부검 전문가인 서종한 박사는 저서 <심리부검>에서 “모호한 단서로부터 자살 위험성을 포착하기는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라며 “대부분의 경우 딱 떨어지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특정한 자살 원인, 혹은 특정한 자살 사망자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라는 질문은 죄책감을 동반한다. 죄책감은 자살생존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감정이다. 선배가 자살하기 2주 전 즈음, C씨는 선배와 통화를 했다. 선배는 학교에 온 김에 보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했다. 그때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형, 제가 전화할게요. 다음에 만나요”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두고두고 C씨를 괴롭혔다. 내가 그 2주 사이에 전화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자인 E씨는 제보자를 잃었다. 유서에는 E씨의 이름과 고맙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내가 기사를 더 많이 썼다면, 내가 더 빨리 기사를 썼다면, 만약 우리 회사가 더 영향력이 있는 언론사였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연예인 자살에 영향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은 20~30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30대 직장인 F씨는 “설리나 구하라 모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걸 언론 보도로 알았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 소극적으로만 지지했다. 그때 응원한다고, 지지한다고 댓글이라도 남길 걸 하는 죄책감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감정은 분노다. 먼저 세상을 등진 사람을 향해 분노하고, 자신의 행동을 곱씹으며 분노한다. B씨는 산업재해 신청을 준비하면서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을 남기고 간 남편에게 화가 났다. 아직 한살이 되지 않은 아이를 볼 때도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나 싶어 화가 났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앞날을 생각해도 화가 났다.

▲ 가수 겸 배우 고(故) 설리의 1주기인 10월 14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 추모 광고가 게재되어 있다. 유명인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사람도 넓은 의미의 자살생존자다.
▲ 가수 겸 배우 고(故) 설리의 1주기인 10월 14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 추모 광고가 게재되어 있다. 유명인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사람도 넓은 의미의 자살생존자다.

또 누군가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노가 오간다. A씨의 딸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 우리 애가 신호를 보냈는데 걔(남자친구)가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남자친구가 제대로 처신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면서 그 사람이 미워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딸에게도 화가 났다.

C씨는 “나는 아직도 선배 동기들이 너무 밉다. 우리보다 가까운 건 동기들인데, 동기들이 잘 챙겼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내가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도 같고…”라고 말했다. A씨나 C씨의 경우처럼, 자살 이후 친구·가족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슬픔, 죄책감, 분노, 고립감 등은 자살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A씨는 딸이 세상을 등지고 1년 뒤, 자살을 시도했다. 일을 관뒀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1년 내내 딸의 사진을 보다가 울며 잠들고, 틈날 때마다 딸을 화장해 뿌린 곳을 찾으며 지냈다. A씨는 “아이가 왜 죽었는지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만 싶었다.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나니까”라고 말했다.

B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 수도 없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물론이고 동생, 부모님 모두 생명의전화, 자살예방협회, 중앙자살예방센터 등에 수없이 전화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언제 또 누군가를 자살로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불러온다. A씨와 B씨 모두 “누가 잠시라도 연락이 안 되면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실제 자살생존자는 일반인에 비해 자살 생각이 높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연구팀의 ‘자살생존자 정신건강 추적연구’에 따르면 자살 생각은 가족의 자살에 노출된 경우 4.4배, 친구의 자살에 노출된 경우 3.7배, 지인의 자살에 노출된 경우 2.2배 높았다. 연구마다 수치 차이는 있지만 ‘높다’는 건 공통적인 결론이다.

B씨는 자살 자체보다, 이후 만들어지는 환경이 자살생존자를 자살로 몬다고 지적했다. “왜 죽었는지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유족이 밝은 옷을 입거나 웃으면 이상하게 본다. 부정탄다고 결혼식에 오지 말아 달라는 거는 너무 흔한 이야기다. 이런 환경에서 자살생존자는 고립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동료를 잃은 사람들은 의지할 곳 없어

연예인의 자살도 대중에 큰 영향을 준다. F씨는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 이후, 자살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한번 자살을 시도한 적 있는 그는 “설리도 죽었는데 내가 못 죽을 이유가 뭐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백종우 자살예방센터장도 “최진실씨가 숨진 뒤, 전국의 정신과가 난리가 났다.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이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이런 고통을 겪지만 자살생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다. 유가족이라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 등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조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 과로사·과로자살 유족회를 이끌고 있는 강민정씨는 “자살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살생존자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내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된다”며 “자조모임을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심리부검도 선택지 중 하나다. 서종한 박사는 “심리부검이 유가족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의문을 풀어줄 뿐 아니라 유가족은 전문가와 면담하면서 심리적인 해소감을 얻을 수 있고, 애도하는 과정에도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심리부검은 정부의 자살예방 정책 수립에도 활용될 수 있다.하지만 친구, 동료, 지인 등을 잃은 이들을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 제보자가 사망한 E씨는 사고 이후 몇 달 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사건과 자신의 일상이 분리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울었다. 그런데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그는 “나는 가족도 아닌데 왜 이러지? 내가 슬프다고 말하는 게 사치 같았다”고 말했다.

김지은 연구자는 ‘사회적 관계 내 자살 실태 및 주관적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유가족과) 동시에 사망자와 주관적으로 친밀하거나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나 동료에게도 적절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자살예방재단(AFSP)은 사망자의 유가족 외에도 친구 또는 동료 등 사회적 관계에 따라 특성화된 지지모임을 시행한다.

유명인의 자살과 관련해 고선규 마인드웍스 심리상담 대표는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에서 “유명인의 마지막 행적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닮고 싶었던 고인의 삶의 측면을 기억해주고 내 삶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좋다”라고 조언했다.

제도 마련과 동시에 자살을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D씨는 친구의 생일이면 케이크와 꽃을 들고 대교에 간다. “다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 높이가 아찔하더라. 이건 사는 것보다 훨씬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이 가늠이 안 된다… 죽을 용기로 살라? 그런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

A씨는 자살을 시도한 순간에 딸을 이해했다. 부모를 두고 간 딸이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자신 역시 남겨진 가족이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이 겪는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는 “자살에 대해 모르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살까지 가지 않게 하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한 거지, 자살에 대한 낙인은 아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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