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의 위기가 곧 지역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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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의 위기가 곧 지역의 위기
  • 뉴경찰신문
  • 승인 2020.10.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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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학생이 줄어요. 피부로 와닿죠. 장사? 안 됩니다. 해마다 매출이 20%씩은 떨어진다고 보면 돼요.”

청주의 한 사립대학교 앞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김은정(가명·40)씨는 매일 포털에 대학을 검색한다. 인근 대학이 행여 ‘부실대학’에 지정될까 걱정이 돼서다. 또다시 구조조정으로 학생수가 줄면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출력 시장이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오프라인 고객이 줄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김씨 점포 앞 대학 재학생수는 600여명 감소했다. 그나마 해당 대학은 50년 넘는 역사와 수도권과 가까운 입지 덕분에 선방한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부실대학 딱지와 인원 감축은 피하지 못했고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학교 앞 주택가에 학생 임차인을 찾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대학교 앞 주택가에 학생 임차인을 찾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인구 감소로 대학이 남아돈다. 이제는 대학 입학이 가능한 학생수(47만9000명)보다 대학 정원(49만7000명)이 많다. 대학의 위기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학 평가를 통한 ‘지방대 구조조정’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 ‘대학기본역량 진단’ 등 정권에 따라 명칭은 바뀌지만, 평가의 본질은 지방대 폐교와 인원 감축에 있다.

학생수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지방대에만 덤터기 씌우는 형태다. 지난 2005년 이후 지방대학 14곳(2019년 기준)이 문을 닫았다. 내년도 입학정원을 유지할 경우, 2024년 학생수 부족은 13만명에 이른다. 신입생 충원율 70%에 못 미치는 지방대는 85곳(34.1%)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방대는 서로 ‘폐교’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처지다.

어느 대학이 가장 먼저 폐교 위기를 맞을까. 위험군으로 꼽히는 대학들은 광역시와 주요 시를 제외한 시·군 단위 소재 대학 116개다. 이들 대학 가운데 93개의 사립대, 그중에서도 입학정원 1000명 미만 소규모 사립대학 55개가 폐교 위험 리스트 상단에 올라 있다. 폐교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마주하기에는 후유증이 크다. 지방대의 몰락은 지방 소멸로 이어진다. 헌법에 명시된 국가균형발전도 함께 사라진다.

정부가 방치한 지방대 몰락

지방대 문제는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도입한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정원자율화에서 싹텄다.

대학설립 요건을 완화하고 법정기준보다 낮은 기준으로 대학 정원 증원을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 규제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대학이 양산됐다. 10년 사이(1990~2000년) 대학 정원은 21만명에서 43만명으로 늘었다.

폐업으로 텅 빈 지역 대학 상가 점포들
폐업으로 텅 빈 지역 대학 상가 점포들

부실대학도 생겨났다. 대학설립 준칙주의 이후 설립된 일반대학 52개 가운데 10개가 폐교하거나 통합됐고, 13곳은 재정지원 제한 등 부실대학으로 선정됐다. 부작용이 생겨나는 데도 정부의 대응은 더뎠다. 정원자율화는 2006년,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2013년까지 유지됐다.

대학 문제에 처음 손을 댄 건 참여정부다. 2004년 대학구조개혁방안을 통해 사립대의 자율적 통폐합을 유도하고 국립대는 학부 정원의 15%를 감축하도록 했다. 통폐합 대학에는 통합 지원금을 지원하는 등 유인책을 내놨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인 대학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경쟁을 통해 평가하고 줄을 세운 뒤 평가 하위 15%에 속한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끊고 퇴출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은 지방대가 타깃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3만6100여명의 입학정원을 감축했는데 지방대에서 2만8400명(78.5%)이 줄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입정원은 6만1000명 감축됐는데 전체 감축 인원의 76%인 4만6000명이 지방대학에서 줄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존 ‘대학구조개혁평가’ 명칭을 ‘대학기본역량 진단’으로 바꾸고 평가 항목과 기준을 개선했지만, 여전히 정책의 본질은 지방대 폐교와 인원 감축에 있다.반면에 인서울 대학, 서울 주요 대학으로 불리는 대학군은 구조조정 무풍지대에 있다. 2015년 이후 인서울 대학 9곳(건국대·경희대·고려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한국외대·홍익대)의 감축률은 1%대에 불과하다. 그 사이 수도권 대학 비중은 2013년 37%에서 2018년 39%로 늘어났다. 고등교육에서도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예견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애초 정부 평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방대는 국가 거점국립대학 정도다. ‘자율’ 기조 아래 지방 사립대는 설립과 정원 증원을 거듭해왔고 방만 경영과 비리에 물든 경우가 많았다. 교육의 질은 하락했다. 지방대학 학생 1인당 재정 규모와 국고보조금, 산학협력수익 등 모든 수치가 인서울 대학을 밑돈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방대를 살릴 궁리를 한 것도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방대 육성 정책이 나왔지만 현장에 스며들지 못했다. 2014년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지방대육성법)이 제정된 후에도 지방대 위기는 심해졌다. 지방대육성법은 지방대학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 지원을 임의적 선택사항으로 규정한다. 의무가 아니다 보니 적정 수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는 지방대 내부에 쌓이는 적폐는 방치하고 육성에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영형 사립대 도입도 가시밭길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지방대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공영형 사립대 도입도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가 대학 운영비 50% 이상을 충당하는 대신 학교를 운영하는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대학이다. 공영형 사립대는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로 지방대의 폐교·퇴출 대신 교육의 질을 높여 존속시키자는 취지에서 나온 구상이다. 하지만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지방 사립대를 살릴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 2019년과 2020년 교육부가 공영형 사립대 사업 예산을 각각 812억, 87억원 요구했는데 기재부가 전액 삭감했다. 결국 교육부는 사업 명칭을 ‘사학혁신지원사업’으로 바꾸고 사업 방향을 틀었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결국 2021년 정부 예산안에 사학혁신지원사업 예산 53억원이 반영됐다. 우여곡절 끝에 불씨를 되살린 셈이다.

하지만 사학혁신지원사업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방정균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대변인(상지대 한의예과 교수)은 “예산 53억으로 5개 대학에 10억원 규모로 지원하는 셈인데 금액이 적어 사업 유인 효과가 떨어진다”며 “10억원 받고 교육부 개입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사학 입장에서는 큰 금액이 아니니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예산을 증액해야 대학의 참여를 이끌고 정책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국가 거점국립대를 집중투자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인서울 대학에 재정지원을 강화하면서 거점국립대와 서울 주요 대학 간 교육 인프라 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정부가 주요 사립대 9곳에 거점국립대 9곳보다 더 많은 재정과 예산을 지원해 지역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의 주요 재정지원사업인 BK21플러스 사업의 경우 서울 주요 사립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4000억원을 지원받은 반면 거점국립대는 2900억원을 지원받는 데 그쳤다. 거점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 주요 대학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김영록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특정 사립대학에 대한 대규모 재정지원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비상식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사이 지역 우수 인재들은 서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거점국립대를 살리기 위해 연간 1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립대 육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미 벌어진 인서울 대학과의 격차를 줄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정책의 성공 여부는 학생들이 거점국립대를 선택하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현장에서는 오히려 인서울 현상이 더 강해지고 있다”며 “취업뿐만 아니라 대학 시설, 문화생활 같은 인프라 측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입시전문가들이 거점국립대를 권해도 학생들이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방대는 지역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은 대학가 인근 상권이다. 한때 권리금을 얹어주며 거래됐던 지역대학 상가에는 빈 점포가 늘고 있다. 방 구하기 쟁탈전이 벌어졌던 대학가 원룸은 세입자(학생) 구하기에 애를 먹는다. 대학 상가번영회는 이미 와해됐다. 1989년부터 청주 시내 대학교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고희순(가명·58)씨는 “학교 덕분에 여태껏 애들 키우고 먹고살았다”며 “학교가 문 닫으면 우리도 끝이기 때문에 동네 주민 모두 학교가 어떻게 될까봐 늘 걱정”이라고 말했다.

위상 추락한 거점국립대

규모가 작은 도시일수록 대학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군 단위 지역의 경우 대학 한 곳이 지역 소득·고용의 9%를 차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강원도 강릉시 관내 대학생의 소비 지출 규모는 연간 1600억원이다. 시 전체 예산 10%를 넘는 규모다. 강릉시 전체 인구에서 대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평균의 2.5배가 넘는다. 실제로 지난 2018년 한국은행은 ‘지역대학의 위기와 지역경제의 활성화’ 보고서에서 최근 5년간 강릉지역 대학생 3600명이 감소하면서 연간 소비지출 규모가 278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이 사라진 도시의 미래는 어둡다. 전북 남원은 2018년 서남대 폐교 이후 20대를 중심으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됐다. 2017년 8만3500명이었던 인구수는 2020년 기준 2500명 가까이 감소했고, 지역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지역경제가 악화되면 지역 인재가 수도권으로 더 빠져나가고 격차는 더 벌어진다. 남은 지방대학의 경쟁력도 악화되면서 끝내 폐교 수순을 밟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전체대학 정원 10% 감축’을 제안한다. 대학 정원 부족 문제를 지방대 폐교를 통해 해결할 게 아니라 전체대학 인원의 감축을 통해 적정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는 온전히 지방대가 감당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며 “전체대학 정원을 10% 감축 등 부족한 학생수를 모든 대학이 고르게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라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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