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빈곤층 “여름을 어찌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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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빈곤층 “여름을 어찌 날까”
  • 뉴경찰신문
  • 승인 2020.07.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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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부담으로 에어컨 사용 못 하는 취약계층 위한 보편적 정책 필요

최진호(83·가명)씨의 얼굴에는 휴지 조각이 붙어 있었다. 휴지로 땀을 닦은 탓이다. 최씨의 방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다세대주택 3층에 있다. 꼭대기 층이어서 여름에 더 덥다고 했다. 1층에서 31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최씨의 방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이 더디다. 방광암 수술 후 매단 소변주머니 때문에 거동이 쉽지 않다. “이 계단 때문에 더 못 나오겠어.” 최씨는 여간해서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

최씨의 관심사는 온통 다가온 ‘여름’에 쏠려 있다. 이 집에서 어떻게든 폭염을 버텨야 한다. 10년 된 에어컨과 선풍기가 있지만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켜기가 어렵다. 학원을 운영했던 최씨는 5년 전 폐업한 뒤 모아둔 돈으로 생활을 해왔다. 6월 현재 최씨의 통장 잔고는 50만 원 정도다. 잔고가 ‘0’이 되면 기초연금 30만원이 유일한 수입이 된다. 당장 매달 내야 하는 월세 40만원이 걱정이다. 여기보다 더 싼 집은 쪽방뿐인데 이사하기가 여의치 않다. 세간살이 처분이 어렵고 이사비용도 부담이다. 더위를 피할 무더위 쉼터가 있다지만 거기까지 걸어갈 엄두가 안 난다. 그나마 올해는 코로나19로 무더위 쉼터 수용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숨겨진 에너지 빈곤 가구

최씨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다. 1989년 이혼한 뒤 줄곧 혼자 살았다. 자녀와도 교류가 끊겼다. 하지만 서류상 부양의무자가 있어 수급 자격을 얻지 못했다.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한 최씨는 자연스럽게 에너지 복지에서 배제됐다. 현재 ‘주택용 복지 할인요금’ 등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정책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을 겨냥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최씨는 “너무 덥고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온다”며 “다만 얼마라도 전기요금 지원을 받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창 서울연구원 안전환경실 부연구위원은 최씨와 같은 이들을 ‘숨겨진 에너지 빈곤 가구’라고 설명한다. 일반 저소득 가구 중에서 에너지 비용 지출을 줄이면서 냉난방 에너지 부족을 겪는 가구다. 정부의 에너지 빈곤 가구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황 부연구위원은 “숨겨진 에너지 빈곤 가구는 폭염과 혹한을 그대로 겪으며 산다”며 “이들 가구는 냉난방 에너지 부족을 경험할 확률이 2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에너지 복지 혜택에서 배제된 이들은 에어컨과 같은 냉방기 사용률이 극도로 떨어진다. 에어컨 보유율은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차상위계층 이상이 더 높지만, 에어컨 사용률은 기초생활수급가구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차상위계층 이상에서는 전기료 감면 등 에너지 복지 혜택이 적기 때문이다. 차상위계층의 월평균 에너지 비용은 3만4900원(서울시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가구의 에너지 비용(3만6512원)보다 낮다. 요금 감면 등 혜택을 받지 못한 가구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현재 정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 빈곤 기준(TPR·소득의 10% 이상을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 비용으로 지출하는 가구)을 따를 경우 에너지 빈곤 가구 비율은 1.3%(서울시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 총소득에서 월세를 차감한 후 재산정하면 저소득 가구 가운데 에너지 빈곤 가구 비율은 29.2%까지 높아진다. 정부 예상보다 더 많은 저소득 가구가 에너지 빈곤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복지 지원대상인 기초생활수급가구는 어떨까.

중증 뇌병변장애인 이성민씨(26·가명)는 대구 달서구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이씨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 한 대를 돌리는 게 고작이다. 지난 6월 10일 오전 10시 20분 이씨의 집 실내온도는 31도였다. 이씨는 대화 중에도 연신 얼음물을 찾았다.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놓고 있어도 실내온도가 35도까지 오른다.

에어컨을 사기 위해 이씨는 지난해 1년 만기 적금을 들었다. 오는 10월이 만기가 되는 달이다. 적금에 부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평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한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열기가 밀려온다. 전동스쿠터에서 내려 거실까지 오면 땀으로 흥건하다. 이씨는 “대구에 열대야가 시작되면 선풍기로는 감당이 안 된다”며 “선풍기 한 대로 살아봤는데 정말 못 살겠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전기료 할인 받아도 요금 무서워

에어컨을 설치한다 해도 가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씨와 같은 1인 가구에 발급하는 에너지바우처(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현금성 쿠폰)은 7000원(하절기 기준)이다. 한국전력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전기요금 할인 혜택은 여름철(6~8월) 최대 2만원에 불과하다. 이씨는 “여름을 나기 위해 지원책을 알아봤는데 도움받을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정말 숨만 붙어 있을 정도, 딱 죽지 않을 정도만 도와준다”고 말했다.

김숙희씨(89·가명·서울 종로구 창신2동)는 독거노인으로 생계급여를 받아 생활한다. 집에 에어컨은 있지만 켜지 않는다. 2018년 폭염 때 한 달 전기요금이 20만원 나온 뒤 에어컨 가동을 더욱 꺼린다. 당시 김씨는 전기요금 할인을 받았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월세 30만원에 전기요금 20만원을 내고 나니 당장 생활이 막막했다. 의사소통이 불편한 김씨를 오가며 돌보는 이웃주민 문선자씨는 “할머니는 늘 집에만 계시는데 지금의 할인 혜택으로는 에어컨을 켤 수 없다”며 “찜통 같은 집에서 전기라도 마음 놓고 쓸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노인 가구 가운데 독거노인 가구, 만성질환을 앓는 가구, 저소득 가구, 단열이 좋지 않은 주택에서 거주하는 가구일수록 에너지 빈곤에 취약하다. 2018년 온열질환 사망자 48명 가운데 70.8%가 65세 이상 고령자로, 사망 발생 장소의 31.3%가 집이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대구 쪽방처럼 ‘상징성’ 있는 가구에 대한 대책은 일부 나왔지만 취약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며 “코로나19로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만큼 가능한 한 집에서 머물면서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 빈곤의 영향은 적절한 취사와 냉난방을 하지 못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빈곤은 의식주 비용의 감소, 영양섭취 부족, 육체적 또는 심리적 질환, 가계부채의 증가, 사회적 소외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북아일랜드에서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가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기관지 질환 발병률이 높고 영양실조와 우울증 등 복합적인 심리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에너지 빈곤은 기초적인 인권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빈곤층 중에서도 취약계층을 별도로 구분해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긴급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으로는 노인 가구, 어린이 양육가구, 임산부가 있는 가구, 장애인가구, 만성질환자가 거주하는 가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빈곤은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인 문제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복지정책이 잘 발달된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저소득 계층의 에너지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에너지 복지정책의 시행을 국가의 중요한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에너지복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가의 역할은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에너지 기본권 보장과 에너지 빈곤층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이다. 사회복지제도의 틀에서 이뤄지는 기초생활수급 및 긴급지원을 제외한다면, 현행 에너지 빈곤층 지원정책은 에너지법에 기초해 이뤄진다. 하지만 이 법의 규정은 선언적인 성격에 불과하다. 정책목표, 지원 대상 및 방식, 전달체계, 재원 마련 방안 등을 담고 있지 않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의 에너지복지 관련 규정도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듯 해당 법률의 부재는 에너지 빈곤층 지원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된다. 가칭 에너지복지법의 제정은 올 하반기 국회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에너지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가계소득, 에너지 가격, 주택의 에너지 효율 세 가지이다. 소득 증가와 에너지 효율 개선은 에너지 빈곤가구의 감소에 기여하지만,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에너지 빈곤가구의 수를 늘리는 구실을 한다. 에너지 가격과 가계 소득에 주목하는 정책으로는 에너지 가격 조정 및 가구수입 지원이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은 난방 및 단열개선사업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지원방식을 기준으로 보면 특별요금 적용이나 현물지원과 같은 직접지원방식과 주택 및 가전기기에 대한 에너지효율 개선을 지원하는 간접지원방식으로 구분된다.

에너지 빈곤층 지원을 일찍 시작했던 선진국들은 직접지원방식과 간접지원방식을 혼용하지만, 간접지원방식의 비중을 점차 늘려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개별 정책의 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특히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과 같은 간접지원방식은 건물분야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통합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령 에너지공기업이 에너지 소비 절감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자 할 경우, 해당 공기업이 저소득층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을 통해 달성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복지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재원 마련 수단으로 복권기금으로부터의 출연이나 신용카드 적립 포인트 기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단으로 충분한 재원 마련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재원과 관련해서는 특히 현행 유류세의 세출 명세를 다시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 등에 세금을 부과해 거둬들이는 세수는 연간 10조원에 이른다. 이처럼 막대한 세원이 확보되고 있지만 세출 명세는 교통시설특별회계가 80%를 차지한다. 약 8조원이 도로와 철도 등 교통시설 확충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 중에서 도로에 투자되는 금액의 5%인 2천억원만 에너지 빈곤층 지원에 사용하더라도, 에너지 복지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연탄가격 보조와 같은 화석연료 보조 목적의 세출을 폐지하거나 조정하는 것도 유력한 재원 마련 방안의 하나다. 석탄생산업자와 연탄제조업자에게 주는 보조금 규모는 연간 4천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연탄을 사용하는 에너지 빈곤층의 비율은 5% 미만으로 연탄가격 보조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주로 비닐하우스 농가나 상업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보조금을 철폐해 에너지 빈곤층 지원에 사용하는 것은, 환경친화적인 조세개편 논의 과정에서 더욱 깊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빈곤층 지원은 저소득층 건강과 복지의 개선, 저소득층 생활 안정,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 에너지 지출비용 절약, 에너지 공급자들의 연체료 손실 예방,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고용창출 등 다양한 사회적 편익을 동시에 거둘 수 있는 정책이다. 취사와 냉난방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는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삶의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에너지 빈곤문제는 기본권 침해로 인식하고 접근해야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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