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범죄, 집 없으면 구속사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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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범죄, 집 없으면 구속사유인가
  • 뉴경찰신문
  • 승인 2020.06.2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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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판사 10명이 말하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주거부정’ 판단 기준

“닷새를 굶어 배가 고프니 밥을 달라.”

1999년 1월 8일 당시 스물아홉 살 정모씨 이야기다. 정씨는 2개월 가까이 주택가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배고픔을 해결하려 시민의 돈을 빼앗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정씨는 경찰에 부탁한 국밥 2인분을 금세 먹었다. 그는 “굶으며 한뎃잠을 자느니 차라리 교도소에 가겠다”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했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거처가 없던 정씨는 구속됐을 가능성이 크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3월 21일 배달용 오토바이에서 4만900원어치 보쌈을 훔친 50대 남성 ㄱ씨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대구에서 일어난 일이다. ㄱ씨는 일정한 거처와 휴대전화 모두 없었다. ㄱ씨의 국선변호인이었던 김무락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동종 전과가 있지만 구속까진 지나치다. 노숙인 쉼터를 알아보겠다”고 재판장에게 의견을 전했다. 재판장도 김 변호사의 요청을 수긍했다.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당일 오후 6시까지만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대구에는 신규 입소자를 받는 쉼터가 없었다. 김 변호사는 “범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허탈감이 컸다”고 했다.

본보는 전직 판사 5명, 현직 판사 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모두 영장전담판사 경험을 했고, 판사 경력은 10년 이상이었다. 일정한 거처가 없는 이들을 둘러싼 영장실질심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들여다봤다.

월세 보증금 묻는 판사도

영장실질심사는 구속 전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1997년 시행됐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할 염려가 있을 경우를 구속 사유로 정한다. 2007년부터는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와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도 구속 사유에 포함됐다. 법 조항이 추상적이어서 판사의 재량이 폭넓게 작용한다.

전·현직 판사 전원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의 중대성을 우선 고려했다”고 답했다.

“중형이 예상되는 사람은 도망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영장을 발부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피의자가 누구인지를 떠나 범죄가 중대하면 구속영장이 발부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일정한 주거 없음’을 의미하는 주거부정(住居不定)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쟁점이 된다. 판사들은 “판단이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사건일수록 일정한 거처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본다”고 했다. 반복되는 무전취식이나 단순 절도처럼 생계형 범죄가 경계선에 있는 사건의 대표 사례다.

판사들은 원활한 수사와 재판을 고려해 주거부정을 검토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홈리스이면서 휴대전화도 없고 연락이 전혀 안 되면 범죄가 경미해도 구속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수사·재판이 진행이 안 된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데 풀어주는 것은 영구미제사건을 만들겠다는 얘기”라는 의견이 나왔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돼 있다. 위치추적도 잘 되는 편이다. 주거가 없다고 해서 결정적 구속사유가 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뤄지는 질문은 판사마다 차이가 났다. 한 전직 판사는 “사는 데가 고시원, 쪽방인지 꼭 물어봤다. 주거가 불안정한 분들은 대부분 행정주소를 잘 모른다. ‘영등포 OO고시원에 산다’는 식으로 답한다”고 했다. “수사기관이 주거부정을 들어 구속하려는 의도를 보일 때는 더 꼼꼼하게 봤다”, “여인숙이나 모텔의 거주 기간도 따져봤다. 보증금을 냈으면 주거부정으로 안 봤다. 월세만 내는 경우는 도망갈 염려가 크다고 봤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면 “얼마 동안 한집에서 살았냐고 물어본 적은 있어도 전·월세 보증금까지 물어본 적은 없다”는 답변도 있었다.

일정한 거처가 없더라도 연락이 닿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판사도 있었다. 수도권의 한 현직 부장판사는 “연락처가 있는지, 언제 휴대전화를 개통했는지, 휴대전화를 오래 유지했다면 요금을 낼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연락이 닿는다면 집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라고 했다.

사회적 유대관계까지 고려한 판사도 적지 않았다. 일부 판사는 주거가 일정하지 않아도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면 도망을 칠 우려가 적다고 봤다. “누구랑 사는지 혹은 연락하고 지내는지도 주거형태만큼 많이 물어봤다”, “가족이나 지인이 면회를 왔는지 물어보기도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전직 판사는 “계약직·일용직이거나 혼자 살면 주거부정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구속 사유인 도망칠 우려가 커진다고 봤다”고 했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송파 세 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송파 세 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선변호인의 ‘순발력’에 기대야

일정한 거처가 없는 이들의 영장실질심사는 대개 5~30분이면 끝난다. 한 전직 판사는 “집 없고 가난해서 심문 시간이 짧은 게 아니라 생계형 범죄는 대부분 절도나 무전취식처럼 사건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 없는 이들의 영장실질심사에는 대부분 국선변호인이 들어가 변론한다. 형사소송법 201조2는 구속영장청구를 받은 피의자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할 때, 피의자에게 변호인이 없으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제도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수사기록 열람이 불가능하다. 변호인은 검찰이 제시한 구속영장청구서만 볼 수 있다. 판사만 수사기록 접근이 가능하다. 영장실질심사가 사실상 1심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점도 꾸준히 지적됐다.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영장재판은 깜깜이 재판이고 기울어진 운동장”, “수사기관의 기록을 읽고 들어갈 수 없고, 피의자한테 들은 이야기만으로 방어해야 한다”, “구속이 형의 사전집행이라는 점에서 1심에서 영장 결과를 아예 반영 안 하긴 어렵다”고 했다.

국선변호인의 부담은 더 크다. 현행법상 국선변호인은 수사단계에 입회하지 않는다. 영장실질심사 일정이 잡히면 전날 통보받은 뒤, 다음날 영장실질심사 전 피의자를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국선변호를 했던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는 “피의자와 15~20분 정도 대화하고 영장심사에 들어간다”며 “단순한 사건이라도 짧은 시간 안에 맥락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검사의 시각에서 쓰인 구속영장청구서만 보고 보편적인 방어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사들이 영장실질심사에 들어오는 국선변호인을 보는 견해는 엇갈린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생계형 범죄는 사건이 단순하다. 변호인의 능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반면 “사선 변호인이 영장을 기각할 수 있는 자료와 판례를 찾아서 노력하면 자연스레 기각 확률이 높아진다”는 반론도 나왔다.

▲ 동네 가게에서 라면을 훔치고 과일을 슬쩍하고, 배가 고팠던 60~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살림살이가 빠듯해지면서 생계형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 동네 가게에서 라면을 훔치고 과일을 슬쩍하고, 배가 고팠던 60~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살림살이가 빠듯해지면서 생계형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임시거처와 복지 확충은 국가의 몫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사선 변호인은 무죄 주장을 많이 해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영장을 기각하기도 하는데, 국선변호인이 맡는 생계형 범죄 사건은 무죄 주장 자체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유엔 자유권규약 제9조, 미주 인권협약 제7조, 유럽 인권협약 제5조 등을 보면 체포·구금된 모든 사람에게 재판받을 때까지 석방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재판의 출석을 보증할 수 있는 조건 등을 부과해 석방할 수 있도록 할 것도 명시했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형 확정 전 피의자 구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검토했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2004년 영장 단계에서 조건부석방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사법개혁위는 영장 단계에서 보석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사법개혁위는 인신구속의 폐해를 최소화해 불구속 수사를 확대하는 방향에 의견을 모았다. 당시 검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판사들도 영장 발부 아니면 기각뿐인 좁은 선택지가 문제라고 봤다. 판사들은 대안도 여럿 제시했다. “위치추적 같은 단서를 붙여 조건부 석방을 활용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일정한 거처가 없는 피의자는 출석을 보증할 수 있는 지인이나 고용주를 내세우는 것도 한 방법” 등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긴급 복지를 형사절차에 연계해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당선인은 2016~2017년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영장전담판사를 맡았다. 이 당선인은 “주거가 없는 사람을 긴급 복지지원 대상에 포함한 뒤 복지부 소관의 보호기구에서 신변을 인계받아 일정기간 동안 보호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현직 판사들은 국가의 복지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인신을 구속당할 요건을 다수 갖추고 있다. 애당초 이 사람들이 영장 단계에 오지 않도록 정부가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결국 사회복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노숙인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국가의 책임’을 적시한 판사도 있었다. 노숙인 ㄴ씨는 지난해 연말 서울의 한 교회에서 잠을 청하다 무단 침입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ㄴ씨는 출소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며칠간 노숙을 하다가 몸 상태가 나빠졌다. ㄴ씨는 예전에도 교회의 허락을 받고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이날은 관리인을 만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가 교회 관계자에게 신고를 당했다. ㄴ씨는 “갱생보호시설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고 법정에서 이야기했다. 갱생보호시설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갈 곳 없는 출소자를 위해 운영하는 생활관이다. 심문을 마친 영장전담판사는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출소자 갱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가 피의자의 주거부정을 탓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호시설로 안내된다면 수사와 재판 출석이 담보될 수도 있겠다. 피고인의 다짐을 다시 믿어주는 것도 법의 따뜻한 지혜로 생각된다. 사안이 중하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 관련성에 관한 소명도 부족하다. 영장을 기각한다.”

영장심사에서 드러난 ‘가난의 그림자’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에는 항구가 있다. 항구는 늘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맡았던 전직 판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뱃일을 알아보던 일용직 노동자들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돈이 없으니까 일어나는 소액 무전취식 같은 사건이었다”고 했다.

그는 생계형 범죄를 마주할 때마다 고민이 깊어졌다. 사건은 경미한데 여관이나 여인숙을 떠도는 ‘집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구속 사유에 해당됐다. 그는 “피의자 연고가 목포가 아니어서 풀어주면 소재 파악이 어렵다는 고충을 경찰관들이 자주 토로했다. 집 없고 가난한 사람은 다 구속될 수 있겠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한 현직 판사는 “대구·부산 등을 이동하며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아 영장심사에서 조금 불리하게 봤던 것 같다”고 했다.

울산과 경기 북부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현직 판사는 “경기 연천·동두천이 관할일 때는 무전취식 사건으로 들어와 구속시켜 달라는 분들이 꽤 있었다”고 했다.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울산에서는 볼 수 없던 사례였다. 그는 “무전취식으로 영장심사를 받던 분들을 보고, 저는 속으로 ‘업을 좀 더 쌓아야 (구치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대부분 영장을 기각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수도권 밖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서울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피의자 상당수가 보이스피싱 전달책에 뛰어든 20대였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모텔이나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이 많았다. 수사기관은 이들을 ‘일정한 거처가 없다’고 분류한다. 서울에서 영장실질심사를 전담했던 한 현직 판사는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뛰다 잡혀 온 지역 청년들을 적지 않게 영장심사에서 봤다”며 “초범이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국가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말단에 어떤 이들이 가담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계절마다 영장실질심사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진다. 겨울은 홈리스가 생활하기 고된 계절이다. 또 다른 현직 판사는 “11월쯤 경미한 범죄로 노숙인들이 영장실질심사에 많이 온다. 혹시 구치소에 들어가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면 ‘솔직히 겨울나기도 힘들어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셨다”고 했다.

삶을 놓아버린 피의자를 마주할 때면 판사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귀찮으니까 그냥 구속시켜 달라는 피의자가 적지 않다”, “아예 삶을 포기한 상태의 피의자도 여럿 봤다”, “영장심사 마지막에 피의자에게 의견을 말하라고 하는데 보통 억울해서 기회를 달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무 말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자포자기한 거다” 등의 사례를 판사들이 공통으로 겪었다.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무전취식을 한 사람은 풀려나면 또다시 술과 함께 무전취식을 할 확률이 높다”며 “이런 피의자를 구속시키거나 형을 선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최수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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